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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데 심심한 일상

바빠서 힘든데 심심하다

손가락이 길면 게으르다는 말이 있다던데, 내 손가락은 꽤 긴 편이다. 손에 뭐가 나서 피부과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피아노 치는 직업이냐고 물어볼 정도. 지금 저는 무직입니다만...?

일년 반 동안 하는 것 없이 시간만 지나간 것 같은데 (남편은 이 말을 싫어한다. 아기 키우는게 제일 큰 일이라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일년 반을 매일 정신없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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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루하루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 아기 - 과 오롯이 단둘이 있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비웃는 듯이 일분일초가 매우 느리게 흘러갔다. 나무늘보처럼 아. 주. 느. 리. 게. 그런데 일분일초가 모이고 모여 하루가 거의 다 끝나갈 때엔 그 하루가 아주 빨리 흘러갔음을 깨닫는다. 참으로 이상하다. 

온전히 아기를 돌보는 일이 전부인 하루를 보내기에 바쁜데 심심하다. 그런데 오늘은 심심하지 않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아기의 긴밀한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갑'님께서 낮잠을 40분 단위로 자다가 요즘 최소 2시간, 길면 3시간 정도 자는 것으로 굳혀지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변화인지 육아하는 분들은 아실거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출근이 9시까지가 아니라 오후 1시까지... 이런 느낌? 아니야... 뭔가 와 닿지가 않는다. 아, 퇴근 시간은 똑같은데 점심시간이 1시간이 아니라 4시간인 느낌! 이거다. 

아기가 낮잠에 들면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이유식도 만들고, 집도 치우고, 나도 점심을 먹고 커피도 한잔 해야 하는데 이걸 40분 안에 하려니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갈 지경이었다. 이유식 만드는 중에 아기가 깨면냄비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고기와 도마에 다지고 있던 각종 야채들을 뒤로하고 아기를 안아주다가, 어쩔 땐 10킬로가 넘는 아기를 안고 부엌을 수습해야 할 때도 있다. 말해 뭐하나, 입만 아프지. 그.. 힘들다는 다 똑같은 푸념밖에 안될 테니 그만 해야겠다.

어쨌든 아기님께서 길게 주무시는 덕분에 나는 할 일을 빨리 마치고 나서 여유롭게 커피 한잔 할 시간이 생겼다. 그 여유는 10분일 때도 있지만 1시간일 때도 있다. 아기가 3시간을 자고, 내가 이유식 만들기를 건너뛰면. (건너뛰면 그대신 밤에 아기 재워놓고 해야 한다는게 함정) 

시간이 생기니 무엇을 할까 하다가 영어가 떠올랐다. 내가 너무 재밌게 공부했던 영어인데, 한동안 손을 놓고 지내서 녹슬까 봐 걱정됐다. 에코닷으로 노래와 뉴스를 듣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보다 손을 많이 놓은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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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아기를 낳기 전엔 시간의 소중함을 몰랐던 것일까. 그 10분의 소중함을... 후회가 막심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나에게 10분이 생겼을 때 내가 알차게 보내는가? 아니다. 나는 나를 안다. 내가 누구인가.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길 좋아하는 유형의 인간. 영어공부도 남들처럼 책상에서 한 것이 아니라,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며 미드를 보면서 했던 사람.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내가 부지런해질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될 것이다. 방심하지 말자. 

강제성이 없으면 영어공부 좀 해야겠다는 나의 다짐은 솜사탕이 물에 녹듯 녹아버릴 것이 뻔하기 때문에 블로그를 하기로 했다. 아무도 이 블로그를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블로그를 운영한다면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겠지 싶다. 그래서 오늘은 스킨도 이리저리 바꿔보고, 얼마전 쓴 글도 다듬고, 이 글도 끄적거린다. 내가 정작 해야 하는 영어공부는 안하고 이렇게 잡담만 늘어놓고 있지만,

그래도 간만에 생산적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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